본문 바로가기
커피

커피의 또 다른 역사

by 재 현 2023. 2. 7.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커피가 되기까지

 

'커피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영국의 근대화와 프랑스혁명 등 유럽의 카페(커피하우스)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늘 거론하지만, 이러한 테마는 고바야시 아키오의 저서 [커피하우스]를 비롯해 훌륭한 책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조금 다른 커피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커피' 이전의 이용법

 

식물학적 분포를 살펴볼 때 커피나무를 최초로 발견하고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라비카종의 원산지 에티오피아 서남부 사람들인 것으로 여겨진다. 교토대학교 후쿠이 가츠요시 교수가 실시 한 현지 조사에 따르면, 그곳에는 '칼리' '티코' 등 부족에 따라 커피를 의미하는 고유어가 따로 존재한다. 종자나 잎을 차처럼 우려 마시고 과육은 볶아서 먹거나, 약으로 먹거나, 구혼할 때 남성이 여성의 부모님에게 선물하는 등 여러 이용법이 있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커피를 일상적으로 이용해온 것만은 분명하다.



  커피에 관해 쓰인 가장 오래된 문헌은, 10세기 페르시아 의학자 알 라지의 저술을 집대성한 [의학 집성](925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이 책에서 어느 식물의 열매나 종자를 끓여서 만드는 '분' 혹은 '분하여'라는 약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로부터 1세기 후 페르시아에서 활약한 의학자 이븐 시나가 저술한 [의학 전범](1020년)에도 '분 만큼' 혹은 '분노'라는, 예멘산 식물로 만드는 '약'이 소개된다. '분'이라는 말은 아라비아어로 커피콩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저서에 기록된 약이 바로 커피의 원류라고 추정한다. 단 생커피콩을 그대로 끓였을 가능성이 높고, 현대인이 즐겨 마시는 커피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페르시아에 전해진 경위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실 에티오피아 서남부에는 9~10세기경부터 에티오피아 북부 기독교도와 홍해 연안의 이슬람 상인들이 진출해 있었고, 현지인들을 붙잩아 노예로 매매하기도 했다. 그 대부분은 아라비아반도, 그중에서도 당시 수도의 성곽 건설 노동력이 필요하던 예멘에 팔려나갔다고 한다. 예멘에는 한때 에티오피아 노예 수가 아라비아인을 웃돌았고, 그들이 발전시킨 세계 최초의 흑인 이슬람 왕조(남자 후 왕조)가 11~12세기에 정권을 잡았다는 기록도 전한다. 증거는 충분치 않지만 9세기경부터 아라비아반도에 커피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아라비아반도에 커피가 전해졌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하나 더 있다. 1996년, 두바이 북동부에 위치한 클 슈라는 유적에서 서기 1100년경의 중국과 예멘제 도자기 조각과 함께 숯이 된 커피콩 두 알 발견되었다. 연대 측정 결과 이 콩은 훗날 어쩌다 떨어져 들어간 게 아니라, 동시대에 석 탄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단 이후 수백 년간 커피를 이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커피의 발명



이후 커피가 재등장한 것은 15세기 예멘에서 수피라고 불리는 이슬람교 수행자들 사이에 퍼졌던 '타파'라는 음료를 통해서다. 수피는 종파나 지역을 초월해 활동하는 신비주의자들로, 수행 중 트랜스 상태(변형된 의식상태)에 빠지는 것으로 신의 정신에 도달한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아편과 대마 등 마약을 계율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까지 흡입하는 일이 흔했다. 카라란 본래 에티오피아 홍해 연안(현재의 지부티 Djibouti, 소말리아 일부를 포함)에서 활동하던 수피들이 이용하던 마약으로 '(식욕이나 수면 등의) 욕구를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뿐 아니라 급제된 백포도주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음료를 카라라 부르며 마셨다고 한다.

  14~15세기경, 타파는 홍해 건너 예멘으로 전해졌다. 맨 먼저 예멘에 전해진 타파는 백포도주도 커피도 아닌, 에티오피아고원에서 자생하는 카트 khat 라는 식물의 잎으로 만든 차였다고 한다. 카트 역시 커피와 같은 각성작용을 하며, 현재 예멘에서는 커피보다 인기 있는 고급 기호식품이다. 지금은 차로 마시기보다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여 신선한 카트 생잎을 함께 씹는 방법으로 사교의 장에서 애용된다. 단 카티논 Cathinone이라는 각성제가 암페타민 amphetamine과 비슷한 성분을 함유하기 때문에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마약으로 규정한다.



  카트는 15세기 초 예멘 각지로 확산하였다. 그러나 카트는 고지대에서만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생약 보존이 어려운 데다 신선하지 않으면 효능이 없어진다. 자연히 재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카트를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당시 예멘 최대 항구마을이었던 아덴aden 사람들은 이 문제를 두고 그 지역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법학자이자 박식한 수피였던 자 말 알던 알바브 하니 Jamal Al-Din Al-afghani에 상담했다. 젊은 시절 에티오피아 홍해 연안에 다녀온 적 있는 그는, 카트 외에 커피나무 열매로 카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아덴에서 병에 걸렸을 때 에티오피아에서 온 커피를 약으로 먹으며 자신이 몸소 그 각성과 흥분 작용을 하는 커피 나와는 이후 최대 수출항이 되는 모카를 비롯해 예멘 전체로 퍼져나갔다. 수피들이 철야하며 코란을 낭독하는 수행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음료가 된 것이다.

  당시 커피 하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건조된 과일의 껍질(허스크)만을 끓이는 '기실'이라는 음료로 예멘에서는 지금도 이 방법이 전해진다. 또 하나가 '분'이라는 음료로, 지금 마시는 커피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그 당시에는 허스크와 생커피콩을 함께 불에 구워서 끓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생커피콩만 볶아 사용하는 방법과는 달랐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 지금과 같은 커피가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6세기 시리아와 터키에는 기실과 분 모두가 전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가 하면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중동을 여행했던 유럽인의 기록에 전하는 것은 분뿐이며, 기실을 목격한 정보는 없다. 그 이후 유럽에 전해 내려온 것도 분뿐인데, 껍질을 제거해 커피콩만 사용하는 현대의 스타일은 이러한 전파 과정에서 생겨난 듯하다.

 

 

 

'커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용 커피와 카페인의 발견  (0) 2023.02.08
커피원두 로부스타의 발견  (0) 2023.02.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