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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용 커피와 카페인의 발견 대용 커피와 카페인의 발견 모순되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관련 기술 중 처음에 가장 관심을 끈 것은 '고가의 커피콩을 사용하지 않고 커피를 만드는' 대용 커피였다. 18세기 후반, 증가하는 커피 소비로 국고 유출을 우려한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가 수입을 규제하고 커피 금지령을 선포했을 때, 치커리와 대맥 등으로 만든 대용 커피를 만들어낸 게 그 시초다. 1806년 나폴레옹이 영국 경제 봉쇄를 노려 대륙봉쇄령을 명한 후 유럽 전역이 커피 부족에 시달릴 때도 대 용 커피가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향미는 어느 정도 비슷하게 흉내 내더라도 커피와 같은 각성 작용을 하는 음료는 찾을 수가 없었다. 나폴레옹 실각 후 1819년 독일 화학자 프리드리히 룩에 가 대문호 괴테가 몰래 가지고 있던 모카 원두.. 2023. 2. 8.
커피 배전, 추출의 역사 배전의 역사 예멘에서 커피 하와가 발명된 후 오랫동안 각 지역은 서로 다른 요리기구를 활용해 배전과 분쇄, 추출을 해왔다. 예멘에서는 프라이팬 같은 금속제 냄비에 배전해 돌로 만든 사발과 봉으로 분쇄했다. 또 터키나 페르시아에서는 바닥에 구멍이 많이 난 프라이팬 같은 조리기구를 커피 배전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커피 전용 배전기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략 16~17세기 이슬람권에서 커피하우스가 유행하던 때라고 추정된다. 1650년경 이스탄불에서는 손으로 돌리는 개인용 원통(실린다)형 배전기구가 사용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유럽에서는 1666년경 런던에서 엘로드라는 사람이 이를 흉내 낸 대형 양철 배전기를 제작했다. 그 후 배전기는 각지에서 다양하게 개량되었다. 그중 가장 획기적.. 2023. 2. 8.
커피원두 로부스타의 발견 로부스타의 발견 중앙아프리카 콩고에서 조사연구를 실시하던 한 명의 식 물리학자가 있었다. 벨기에 장부를 농업연구소 교수 에밀 로렌이다. 벨기에의 농예 회사에서 자금을 받는 대신, 발견된 식물에 관한 권리를 받는 조건부 계약으로 콩고에 부임한 그는 1895년 그곳에서 새로운 커피나무 속 식물을 발견한다. 식물을 벨기에로 가져간 그는 자기 제자 월 데만 과 원예회사에 각각 나눠주었다. 이 식물이 신종 커피임을 확신한 월대만은 1898년 묘목을 '로렌의 커피나무'라는 뜻의 '로랜티이종'이라고 명명한다. 한편 다른 식물학자에게 검증을 의뢰했던 원예회사 역시 이것이 신종임을 확신한 뒤 '로부스타종'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원예회사 가 1901년 인도네시아에서 재배시험을 거친 결과, 이 신종은 모든 유형의 녹병에 내.. 2023. 2. 8.
커피 재배와 생산기술의 역사 재배와 생산기술의 역사 커피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당연히 수요가 증가했고, 상업 작물 고 재배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제 커피 재배의 역사를 살펴볼 차례다. 재배의 시작 커피 재배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정확한 기원은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커피 하와가 퍼지면서 15세기 중반경 예멘에서 본격화한 것만은 틀림없다. 예멘에서는 그 당시 커피나무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일명 '예멘 재배종'이 아직도 독자적 품종군으로 재배되고 있다. 15세기 후반~16세기에 걸쳐 커피가 이슬람 문화권에 널리 퍼지면서 생산도 확대되었다. 1538년, 예멘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이 주민들에게 재배를 장려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오스만 제국은 커피 생산을 독점하기 위해 예멘에서 종자와 묘목을 반출할 수 없도록 금지하.. 2023. 2. 8.